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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12 공원: 공공 상호작용의 무대

공원: 공공 상호작용의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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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하포드의 새 책  "경제학 콘서트 2"가 출간되었다. (글을 써두었던 작년 시점에서 새 책이라는.. ^^;) 전작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사회 현상을 경제 이론에 견주어 재미나게 풀어쓴 책이다. 그 중에서도 인터랙션 디자인 관점에서 흥미 있는 부분이 있어서 발췌하였다.


나는 토요일 오후 4시경에 공원에 들렀다. 화창한 9월의 오후였다. 50여 명의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아이들은 뛰어놀고 있었다. 베레를 쓰고 검은색 보온복을 입고 학구적인 안경을 낀 자메이카 남성이 어린 딸 주변에서 축구공을 가볍게 차는 모습이 보였다. 또 아이들이 손가방을 끌어당기는 동안 유모차에 기대어 수다를 떨고 있는 폴란드 엄마들과 아기용 그네에 어린 딸을 태우고 가볍게 밀어주면서 즐거워하는 인도계 아버지의 모습도 보였다. 그림자의 길이가 점차 길어지면서 사람들의 수는 점점 줄었지만, 사람들의 혼합은 바뀌지 않았다.

오후 6시 30분이 지나자 땅거미가 드리워지는 가운데 가족 단위로 아빠와 엄마와 아기들 20명 정도가 여전히 공원에서 놀고 있었다. 그러나 공원은 이미 다른 모습으로 변하고 있었다. 부모들은 "5분만 더 노는거다.", "미끄럼은 한 번만 더 타자."라고 말하면서 아이들을 다그치고 있었다. 순식간에 공원에는 가족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10대 청소년 패거리들이 공원 반대편에 자리를 잡았다. 한 패거리는 그네를 타고 있었고, 다른 패거리는 시소를 따라 줄을 서 있었다. 그들은 아주 나쁜 아이들 같지는 않았고, 그저 자기들끼리 어울리는 게 좋아서 함께 모여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공원 분위기는 일순간에 바뀌었다.

이와 비슷한 극단적인 변화는 날씨가 바뀔 때도 볼 수 있다. 나는 구름이 끼고 가벼운 재킷을 걸쳐야 할 만큼 선선하거나,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지는 날씨에 딸을 데리고 공원을 찾으면 우리밖에 없을지 모른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어쨌다는 말일까? 공원은 날씨와 시간에 따라서 그 모습이 달라진다. 사람들은 날씨가 화창하면 공원에 가는 걸 좋아한다. 반면 불량스러운 10대 패거리가 아니라면 저녁에 공원에 가는 사람은 좀처럼 없다. 그러나 한 가지만 지적해보자. 따뜻한 저녁에 집 정원이나 노천 카페에 앉아 있으면 너무나 행복하다. 그런데 왜 공원에서는 그러지 못하는 걸까? 날씨가 흐려지면 공원에서 노는 게 조금 재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눈보라나 허리케인이 몰아치는 것도 아닌데 기온이 몇 도 바뀌거나 시간이 몇 분 흘렀다고 해서 어떤 때는 5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공원에서 놀고, 또 어떤 때는 단 한 사람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 극단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이유는 뭘까?

그런 변화는 상호 작용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도심 속 공간은 교류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특히 공원은 더욱 그러하다. 흐린 날에는 딸을 데리고 공원을 찾아도 오래 머물지 않는다. 날씨 탓이 아니라 공원의 분위기 때문이다. 아무도 없어서 구경할 것도 없다. 날씨가 좋아지고 사람들이 조금씩 나타나면 공원에는 활기가 넘친다. 사람들은 공원에 활기가 넘치기 때문에 그곳에 나와서 놀고, 공원은 사람들 때문에 활력이 넘친다.


이 책은 경제 현상에 관한 책이지만, 공원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에 대해 정말 세심하게 묘사해 주었다. 지은이는 사회 현상을 관찰하는 데 비상한 재주가 있음이 틀림없다.

본문에 묘사한 대로 공원의 모습은 시시때때로 계속 바뀐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분명 사람들 사이의 '암시적(implicit)' 상호작용에 의한 것이다. 즉, 공원 내의 사람들은 서로 '명시적(explicit)'으로 대화를 하거나 부대끼지는 않지만, 분명 서로 간에 어떤 사회적 약속에 따라서 행동하고 있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상호작용이 생긴다. 그리고 그러한 결과로 본문에 나온 것 같은 자연스러운 사용 행태의 변화가 이루어지게 된다.

이러한 암시적 상호작용은 어느 지점에서 평형을 이루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진다. 본문의 예를 들면, 오후 6시가 지나면 자연스럽게 가족→십대로 공원 사용자의 물갈이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그것이다. 하지만 만약 누군가 이러한 자연스러운 평형 상태를 깨게 된다면 공원에 온 사람들 사이에서 명시적 상호작용이 생기게 되면서 그동안의 공원과는 다른 양태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다소 불량스러워 보이는) 십대들이 오후 내내 떼를 지어 공원을 어슬렁거린다면 가족 단위 방문자들은 십대들에게 항의를 한다거나, 옆에 있는 경찰에게 순찰을 돌아달라고 요청한다던가 혹은 우르르 집으로 돌아가 버린다던가 하는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최근 공공 환경을 보다 상호작용적으로(interactive) 만들고자 하는 시도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는 반응성 환경(Responsive Envirionment)을 조성하는 쪽으로 이루어지는 듯 하다. 공공 환경에 대형 디스플레이를 설치하고 이런 저런 인터랙티브 미디어를 보여주는 경우가 여기에 속할 것이다. 지난 글 '2009/10/09 - 조금 아쉬운 Media Façade'에 썼던 미디어 파사드도 비슷한 예이다. (사실 미디어 파사드는 active하긴 하지만 inter-active한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지만...)

또는 설치 예술 차원에서 미디어 아트를 적용하는 접근 방법도 있다.  다음 동영상은 W 호텔 로비에 전시되어 있는 "The Wooden Mirror"이다. (Danel Rozin 작품)






하지만, 위에서 예로 든 상호작용적 환경들은 환경과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을 제안하기는 하지만 정작 그 환경 내의 인간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은 별로 달라질 것이 없다. 즉, n명의 사람이 있어도, 환경과 인간 사이의 1:n 상호작용만 있지, 인간 사이에서의 n:n 상호작용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공원은 인터랙션 디자인을 해 보기에 무척 흥미 있는 환경이다. 팀 하포드가 묘사하였듯이 공원이라는 공공 환경은 아주 미묘한 평형이 존재하고 있는 곳이다. 그 이유는 공원이 다수의 사람이 공원이라는 제한된 자원을 공유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런 곳에서는 균형을 무너뜨리는 아주 작은 행동이 다른 수많은 사용자의 행동을 크게 변화시킬 수도 있다.

위에서 예로 쓴 용인되지 않는 시간에 불량 청소년이 출몰할 때 다른 시민이 사라져 버리는 것은 작은 변화의 예이다. 서울 광장에서 보수 단체와 진보 단체의 모임을 동시에 허용하여 대규모 유혈 사태가 벌어지는 시나리오처럼 강력한 상호작용이 생기게 될 수도 있다.


이런 공공 환경에서 새로운 인터랙션 디자인을 시도해 보는 일은 아주 재미있는 작업이 될 것 같다. 사람들이 의례히 제공된다고 생각하는 자원(예를 들면 야간 시 조명), 관습적으로 서로 알아서 나눠쓰는 자원(예를 들면 공원 내에서 개인의 점유 공간)의 사용 방법을 조금 바꿔준다면 사람들이 새로운 방법으로 공원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공원을 지금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재미있는 공원으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평범한 동네 공원이 놀이 공원보다 더 흥분되는 곳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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